일상

Are you busy?

Bioholic 2022. 2. 25. 08:54

얼마전에 학생 한 명이 오피스 문을 두드리며, "Are you busy?" 라고 물었다. 

그때가 아마 한창 R21 그랜트를 쓰는 중이었던거 같고 (데드라인 2월 16일), 빨리 끝내고 나서 NIH 그랜트 리뷰랑 (데드라인 2월 18일), 리뷰 페이퍼 메뉴스크립트 완성 (데드라인 2월 28일) 까지 해야될 상황이어서 스트레스를 꽤 받던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머리속에서는 "당연히 바쁘지, 안바쁜 교수도 있나?" 라는 가시돋힌 답변이 떠올랐다. -_- 물론 남에겐 싫은 소리 1도 못하는 성격이라, 세상 착한 웃음을 지으며 "No, you are fine. What's up?" 이라고 대답했지만.

 

학생은 아무 죄가 없다. 물어볼게 있어서 용기내서 찾아온 것일텐데, 착하고 예의바르니깐 일단 내가 대화할 시간이 있는지 확인한 것일뿐. 그리고 이 상황은 데자뷰처럼 16년전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때가 아마 박사과정 1년차 때 로테이션을 돌던 중이던가 아니면 로테이션을 마치고 이제 막 랩을 정했을 즈음이었다. 교수들이 로테이션 도는 학생한텐 보통 잘해주니깐, 아마도 이미 랩을 정한 후였겠지? -_- 나도 지도교수님한테 물어볼게 있었던거 같고, 노크를 하며 "Are you busy?" 라고 물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돌아온 대답은 "Of course I am. I am always busy." 뭐 이런 류의 대답이었던거 같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되돌아간건 아니고, 교수님과 마주 앉아서 필요한 디스커션을 하긴 했지만, 그때의 내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이렇게 날 선 반응을 보이지?' 뭐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던거 같기도 하고.

 

물론 내 지도교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좋은 분이시다. 지금 짐작해보건데, 그때 그 교수님도 엄청 할 일이 많아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었나보다. 다만 나처럼 속으로 숨기질 못하고 티를 좀 냈던 것일뿐?  물론 그 당시엔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고, 그 시절 내가 혼자 짐작하고 넘어갔던 바로는, '내 부족한 영어를 지적해 주려고 그러셨던게 아닐까?' 였다. 보통 저런 상황에서는 "Do you have a minute?" 뭐 이정도로 말하는게 더 자연스러운거 같은데, 그 당시엔 당연히 이런걸 몰랐었다. 지금도 못하는 영어를, 16년전엔 오죽했을까.

 

오늘 리뷰 페이퍼 메뉴스크립트 드래프트를 완성했는데, 한가해지기는 커녕 3월 10일 발표준비와 리서치 페이퍼 메뉴스크립트 쓸 생각에 마음은 더 바빠졌다. 3월 발표와 논문에 들어갈 데이타를 만들려면 실험도 해야돼서 오늘부터 실험도 시작했다. 벼락치기도 이런 벼락치기가 없네. -_- 3월까지 이 모든걸 다 끝내야 하고, 그러고 나면 4월 데드라인인 ACS 그랜트가 또 기다리고 있다. 이런걸 두고 산넘어 똥밭이라고 했던가. 왜이렇게 맨날 바쁜 것인가 생각하다가 갑자기 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다 써놓고 보니... 제가 원래 블로그에서 존댓말로 글을 썼었죠???

갑자기 뭔가 엄청 어색하네... 다음부턴 다시 제대로 존댓말로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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